[기사] 사무관 승진 앞둔 이규진 속기사 “직원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관리자 되겠다”
“초급관리자(사무관)가 대단한 자리는 아니에요. 실무에서 관리자가 됐다 뿐이지, 조그마한 자리입니다." 오는 7월 사무관 승진을 앞두고 있는 국회 의정기록과 이규진 주무관은 이렇게 말을 꺼냈다. 겸손하게 낮춰 말했지만, 공직에서 사무관은 관리자급으로 중요한 자리다. 실무진들의 협력을 이끌면서도 '윗분'을 도와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현장의 지휘관이다. 직원들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책임이 있는 만큼, 단단한 각오도 필요하다.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이해해 주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는 예비 관리자로서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마음 준비가 단단해 보였다. 이 주무관은 지난 달 국회사무처 보통승진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무관 승진임용 예정자로 결정됐다. 국회에 들어온 지 28년 만이다. 5급 사무관 승진임용 예정자는 이 주무관을 포함 모두 14명이다. 그의 소감과 업무에 대한 열정을 들어 보았다.◇우연한 기회에 속기사에 관심…맞춤복처럼 딱 맞는 일 이규진 주무관이 속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당시 ‘향장’이라는 화장품 잡지에 ‘국회 속기사 양성소’ 소개글이 실렸는데, 이 주무관의 언니가 이를 보고 추천한 것이다. 그는 ‘속기사’인지 ‘속기자’인지도 모르고 속기사 양성소 입소시험을 치렀다고 했다. 우연히 접한 속기 업무지만 그에게는 맞춤복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40여 명을 뽑는 속기사 양성소 입소시험에 합격한 그는, 1년여 교육 끝에 1급 속기사 자격을 한번에 따냈다. 당시 회의록은 조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자였는데, 한문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그에게는 업무에 흥미를 끄는 자극제가 됐다. 수필 속기는 글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속기사 양성소의 첫 수업도 1분 동안 1부터 차례대로 가능한 한 빨리 많은 숫자를 써보라는 테스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 주무관은 “그동안 빨리 쓰려고 노력하거나 동작이 빠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테스트는 재미있었다”면서 “아마 107까지 썼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100 이상 쓴 사람은 속기에 자질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던 거 같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예정에 없던 국회 속기사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국회의원 볼펜을 갖다 쓴 아찔한 기억 속기사로서 국회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이 주무관이 국회에 첫 발을 내디딘 1988년은 제5공화국 비리 청문회가 열린 해였고, 이때는 16년 만에 국정감사가 부활해 정치적인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다. 회의가 잇따르면서 의사발언을 기록하는 속기사 업무도 바빠졌다. 청문회는 자정이 다 돼서야 산회하기 일쑤였고, 남아서 원고를 마감하고 나면 새벽 서너 시를 훌쩍 넘겼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서야 긴 하루를 끝내고 퇴근을 했다. 이규진 주무관은 “밤늦게 집에 가는 게 막막해 사무실에 남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면서 “순복음교회 앞에서 첫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얼굴을 못 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회의장에서 속기를 하다가 볼펜 잉크가 다 떨어지는 당황스러운 일을 겪기도 했다. 지금과 달리 수필 속기를 하던 시절이다. 외통위 속기 도중 볼펜 잉크가 점차 소진돼 가는 것을 느꼈다. 수필 속기사에게 볼펜은 ‘전장의 무기’와도 같다. 평소 제복 이곳저곳에 넣어두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왔지만, 야속하게도 그날따라 주머니에서 찾을 수 없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점점 흐려질 즈음, 그는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도영심 전 국회의원에게 목례를 한 뒤 볼펜을 가져와 재빠르게 속기를 이어나갔다. 속기가 끝나고, 인사를 하며 볼펜을 돌려주려 하자 도 전 의원은 속기사 제복과 잘 어울리는 볼펜이라며 선물로 가지라고 했다. 당시 속기사 제복은 밤색에 체크무니가 있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국회의원 볼펜을 갖다 쓴 신참 속기사의 아찔한 기억을 이제는 웃으면서 추억으로 되뇔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검토와 재검토의 반복…‘무결점 회의록’ 만든다 국회 속기업무는 검토와 검토, 또 검토의 연속이다. 무결점 회의록을 펴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확인 작업을 거친다. 2인1조로 회의록을 작성할 경우, 주·부무 속기사가 작업한 원고는 담당 계장이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내용을 재검토하고, 계장 승인 후 편집 주무관의 교정·교열 작업을 거친다. 이런 검토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10분 분량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데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지난 2월 필리버스터는 9일 동안 정회 없이 이어지면서, 의정기록과 직원 65명이 24시간 2교대로 근무에 투입됐다. 편집 업무 또한 6인1조로 매일 200페이지 분량을 검토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밤샘 작업 끝에 본회의 1년치 분량과 맞먹는 1695쪽의 임시회의록이 발간됐다. 이 주무관은 회의록 최종 검토가 오는 6월께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준비된 관리자들 많아, 승진기회 더 많았으면…” 이규진 주무관은 4월부터 6주간의 교육을 모두 이수하면, 오는 7월 승진 임명장을 받게 된다. 1988년 국회 속기사로 임용된 후 30년 가까운 기간 국회에서 일하며 탄탄한 실무경험을 쌓은 결과다.승진이라는 기쁨을 앞두고도 이 주무관은 기쁜 마음보다는 동료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먼저 전했다. 동료들의 승진이 더뎌지는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는 “승진 기회를 주신 선배 동료 후배님들께 감사하다”면서 “의정기록과는 타 직렬에 비해 승진 기회가 적은데 앞으로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서 실력을 갖춘 동료들이 관리자로 기량을 펼쳐 조직 전체에 활력이 넘쳐 나기를 희망해 본다”며 소속 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병탁 기자 ppt@assembly.go.kr국회ON. 생각을 모아 내일을 엽니다
2016-04-08